
윌리엄 터너, <전함 테메레르>, 1838-1839, 캔버스 위에 유채, 91×122cm, 영국 런던 내셔널 갤러리 소장
글. 안진국 미술비평가, 『비평의 조건』 저자 critic.levaan@gmail.com
007은 가장 오래된 영국의 첩보영화 시리즈다. 2012년에 개봉한 <007 스카이폴>은 이 시리즈의 스물세 번째 작품으로 그 시작은 이렇다. 임무를 위해서 항공권과 위조된 여권을 받아야 했던 007 제임스 본드는 런던 내셔널 갤러리 34번 방 중앙에 있는 등받이 없는 긴 의자에 앉아 접선자 Q를 기다린다. 본드가 물끄러미 작품을 바라보고 있는 사이 젊은 남자 Q가 본드 옆에 앉아서 똑같은 그림을 보면서 “한때 잘 나갔던 배가 불명예스럽게 끌려가고 있잖아요. 시간은 누구도 피해갈 수 없는 법인가 보죠?”라는 의미심장한 말을 건넨다. 본드와 Q가 함께 바라본 그림은 바로 <전함 테메레르(Fighting Temeraire)>(1838~39)다. 불타는 듯한 석양빛과 싸늘한 푸른빛의 대기가 색채의 향연을 펼치고 있는 강물 위로 검고 묵직한 작은 배와 밝은 색의 큰 배가 떠 있는 그림.
지폐가 된 작품, 그리고 예술가
이 작품은 1805년 트라팔가르 해전에서 프랑스와 스페인의 연합 함대를 격파한 전함 테메레르 호가 시간이 흐르면서 구시대의 유물로 전락하여 해체되기 위해 작은 증기선에 끌려가는 장면이다. 그래서 이 작품의 원제는 Fighting Temeraire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전함 테메레르의 마지막 항해>나 <해체를 위해 예인되는 전함 테메레르>라고 불리기도 한다. 돛을 단 거대한 범선을 증기기관을 가진 작은 배가 검붉은 연기를 뿜으며 끌고 가는 모습은 새로운 기술과 산업 혁명 시대가 열렸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이것이 <007 스카이폴>에서 늙은 본드의 상황, 다시 말해서 전함 테메레르처럼 예전에는 굉장한 시절이 있었지만, 세월이 흘러 이제는 구시대의 인물이 되어버린 본드의 상황을 상징적으로 드러낸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전함 테메레르>는 태양이 저무는 시간이나 전체적인 그림의 색채가 시대의 뒤안길로 사라지고 있는 거대한 범선을 애틋한 감정으로 바라보게 만든다.
007 시리즈에 등장할 정도로 이 그림을 영국인은 대단히 좋아한다. 가장 좋아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BBC 라디오 4에서 1995년 이런 설문조사를 했다. ‘영국의 모든 미술관에서 소장하고 있는 작품 중에서 가장 위대한 작품은 무엇인가?’ 그때 1위를 차지한 그림이 바로 <전함 테메레르>다. 이 그림은 급기야 영국에서 유통되는 20파운드 지폐에 넣기로 결정해 올해 2월부터 <전함 테메레르>가 인쇄된 지폐가 사용되고 있다. 그러면 영국인은 이 그림을 그린 작가와는 별개로 이 그림만 좋아하는 것일까? 아니다. 이 지폐에서 이 그림은 그저 들러리일 뿐이다. 이 지폐의 주인공은 바로 이 작품을 그린 화가 조셉 말로드 윌리엄 터너(Joseph Mallord William Turner, 1775~1851)다. 지폐의 모델을 바꾸기 위해 영국에서는 2016년 미술가와 조각가, 패션 디자이너, 사진가 등 총 590명의 예술가를 선별했고, 거기서 최종적으로 선정된 사람이 바로 윌리엄 터너다.
터너는 영국이 자랑하는 국민화가다. 영국에서는 매년 젊고 재능있는 미술가에게 주는 상이 있다. 바로 ‘터너상’(Turner Prize)이다. 여기 후보에 오르는 것만으로도 세계적으로 화제가 되는 권위 있는 상이다. 이 상은 1984년부터 수여되었는데, 해를 거듭할수록 그 권위와 위상이 높아지면서 다른 나라 미술상에도 영향을 끼쳤다. 우리나라에서도 매년 ‘올해의 작가상’을 수여하는데, 그 시작과 형태가 ‘터너상’의 영향이 물씬 풍긴다. ‘터너상’이라는 명칭으로 이미 짐작했겠지만, 이 명칭은 바로 윌리엄 터너의 이름을 따서 지어졌다.
영국의 제일 권위 있는 미술상에 ‘터너’라는 이름을 붙이고, 가장 위대한 작품으로 그의 작품을 뽑고, 지폐의 모델까지 되었으니, 영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화가라는 말이 과장된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눈보라가 휘몰아치는 밤바다와 맞서 싸운 예술가
윌리엄 터너는 어릴 적에 정규적인 미술 교육을 받지 않았다. 그저 아버지가 운영하던 이발소에 온 손님의 초상화를 그려주는 정도였다. 그러던 와중에 자신의 재능을 발견했다. 이렇게 재능을 발견한 터너는 화가가 되겠다는 희망을 품고 판화가와 제도공, 건축가의 조수가 되어 꾸준히 그림을 그렸다. 그는 자연의 아름다움과 시골의 풍경에 매료되어 전원 풍경화를 그렸는데, 사람들이 그 풍경화를 무척 좋아했고, 그 작품들을 판매하면서 경제적인 여유를 갖게 되었다. 그래서 왕립 아카데미 학교에 입학해서 정식적으로 그림을 배울 수 있었고, 전람회에 출품한 작품들이 호평을 받으면서 점점 미술계에서 인정받게 되었다. 급기야 젊은 나이에 왕립 아카데미의 교수까지 된다. 젊은 나이에 부와 명예를 동시에 얻은 것이다.
하지만 그는 미술계에서 인정받은 자신의 화풍에 안주하지 않고, 자연을 직접 몸으로 체험하면서 잘 그린 그림이 아니라, 자연이 느껴지는 그림을 그리길 원했다. 그래서 그는 자신이 그리고자 하는 현장에 몸을 던졌다.
이런 그의 일화 중에서 가장 유명한 것은 67세의 나이에 눈보라가 휘몰아치는 바다를 체험하기 위해 떠난 일이다. 그는 폭풍우로 출렁거리는 겨울 바다가 어떤 느낌인지 알고 싶어서 영국에서 네덜란드로 가는 증기선 ‘에어리얼’에 탑승했다. 그 배를 타고 가다 폭풍우가 치자 그것을 관찰하기 위해 선원에게 배의 돛대에 자신의 몸을 묶어 달라고 했고, 67세나 되는 늙은 나이에 무려 4시간이나 갑판 돛대에 묶여 눈보라와 사투를 벌이며 폭풍우가 휘몰아치는 겨울 밤바다를 관찰했다. 이 경험은 1842년 <눈보라-항구를 떠나는 증기선>이라는 놀라운 작품이 되었다.
그런데 이 그림은 그 당시에 너무 파격적인 작품이었다. 그림을 본 그 당시 어떤 미술역사가는 “터너의 가장 유명하고 가장 이해하기 힘든 황당한 작품”이라고 평가했고, 어떤 미술비평가는 ‘비누 거품과 석회 반죽’뿐인 작품이라고 혹평을 퍼붓기도 했다. 그럴 만도 한 것이, 눈보라가 휘몰아치는 바다와 그곳을 항해하고 있는 증기선이 있어야 할 텐데, 그림을 보면 바다와 배의 형체를 구분할 수 없을 정도로 뿌옇게 그려져 있다. 어디가 바다고, 무엇이 파도며, 어디가 하늘인지, 증기선은 있는 건지도 잘 알 수가 없다. 그림은 마치 추상화처럼 회색과 녹색, 갈색의 붓터치가 화면 안에 가득히 어지럽게 표현되어 있을 뿐이다.
그런데 자세히 보면 파도에 흔들리는 증기선의 굴뚝에서 갈색의 연기가 뿜어져 나오는 것이 보이고, 은색의 창백한 하늘도 느껴지며, 비를 잔뜩 가지고 있을 것 같은 검은 구름도 보인다. 성난 파도가 거대하게 일어나고, 소용돌이치는 거센 바람이 불어오는 것도 느껴진다. 터너는 이런 말을 했다. “이해받기 위해 이 그림을 그린 것이 아니라, 그러한 장면이 어땠는지 보여주고 싶었다.” 그는 폭풍우의 정확한 장면을 세세히 기록하는 것이 아니라 거세게 몰아치는 폭풍우, 거칠게 출렁이는 겨울 밤바다의 느낌을 그리길 원했던 것이다.
이 그림에 대해 혹평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빅토리아 시대 유명한 영국 미술 비평가 존 러스킨은 그림이 그려진 다음 해에 출간한 『현대 화가들』(1843)이란 책에서 이 그림을 “여태까지 그려진 바다 그림 가운데 바다의 움직임과 엷게 낀 안개, 빛을 가장 장엄하게 표현했다”라고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터너는 이 일화 외에도 눈사태가 난 곳을 찾아가고, 눈보라 치는 겨울 산을 넘고, 증기기관차의 차창 밖으로 고개를 내밀었던 일들이 전해진다. 젊은 시절의 평탄한 길에 안주하지 않고, 예술을 향한 뜨거운 집념으로 그린 그림이 사랑받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인 지도 모른다. 그의 작품과 예술을 향한 열정을 어찌 사랑하지 않을 수 있으랴.

윌리엄 터너, <눈보라-얕은 바다에서 신호를 보내며 유도등에 따라 항구를 떠나가는 증기선. 나는 에어리얼 호가 하위치 항을 떠나는 밤의 눈보라 속에 있었다>,
1842, 캔버스 위에 유채, 91.5×122cm, 영국 테이트 컬렉션

윌리엄 터너와 <전함 테메레르>가 인쇄된 20파운드 지폐
(출처 : www.changechecker.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