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크 파빌리온>을 만드는 누에의 모습 (출처: www.moma.org ©Denis Doorly)
글. 안진국 미술비평가, 『비평의 조건』 저자 critic.levaan@gmail.com
2018년 초 브래드 피트와의 스캔들로 미국 연예계에서 잠깐 화제를 끌었던 인물이 있다. 브래드 피트가 앤젤리나 졸리와 이혼한 후 첫 스캔들의 주인공. 바로 네리 옥스만(Neri Oxman, 1976~)이다. 하지만 그는 단순히 연예계에서 반짝 소비될 인물은 아니다. 이번 스캔들 이전부터 옥스만은 건축과 디자인계에서 유명인사였다. MIT 미디어 랩의 교수이기도 한 그는 건축가이며, 생물학자, 엔지니어, 디자이너이기도 하다. 그는 ‘매개물질그룹’(Mediated Matter Group)을 이끌고 있으며, 생물학, 공학, 재료 과학, 컴퓨터 과학을 넘나들며 작업한다. 2015년 TED 강연을 했을 정도로 옥스만의 연구는 인정을 받고 있으며, 2016년 세계경제포럼에서 문화선두자(Cultural Leader) 상과 MIT Collier 메달, 빌체 디자인(Design in Vilcek) 상 등 40개가 넘는 상을 받을 정도로 탁월한 인물이다. 올해 2월 말에는 MoMA(뉴욕현대미술관)에서 전시까지 열었다. 이제 그는 예술가라고도 불려야 할 것이다.

<실크 파빌리온>이 보이는 《네리 옥스만: 물질생태학》 전시 전경
(출처: Stapp Stories : Paola Antonelli (@paolantonelli))

네리 옥스만(Neri Oxman).
(출처: https://www.stirworld.com)

네리 옥스만, MIT 미디어 랩, , 2018
(출처: https://www.behance.net)

네리 옥스만, MIT 미디어 랩, , 2018.의 세부모습
(출처: https://www.behance.net)

딱딱한 외곽을 지녔지만, 허리 부분은 유연하게 만들어진 봉제선 없는 망토와 치마
(출처: https://www.irisvanherpen.com)
물질 생태학(Material Ecology)
안타까운 일이지만, 2020년 초반부터 지금까지 전 세계의 공공 문화공간은 코로나19로 전시장 문을 굳게 닫고 있다. 미국은 코로나19의 피해나 확산 속도에 있어 1, 2위를 다투는 나라이고, 메가시티인 뉴욕은 그 피해가 상상을 초월한다. 이런 시기에 MoMA에서 《네리 옥스만: 물질생태학(Neri Oxman: Material Ecology)》라는 제목으로 옥스만의 전시가 개최되었다. 2월 22일 오픈한 이 전시는 5월 25일까지 진행되는 것으로 계획되어 있었다. 하지만 코로나19의 확산에 따라 MoMA가 전시를 잠정적으로 중단함으로써 결국 전시를 오픈한 지 얼마 되지 않아 현장 전시가 막을 내렸다. 그렇지만 다행히도 5월 14일부터 현재까지 MoMA 공식 웹사이트에서 온라인 전시로 진행되고 있어 간접적으로나마 전시를 경험할 수 있다.
현대미술의 중심지인 미국 뉴욕에서, 그것도 현대미술전시장으로 손꼽히는 MoMA에서 전시를 열었다는 것은 옥스만의 작업이 현대미술에 맞닿아 있음을 의미한다. 이번 전시는 그가 미술계로 도약하는 발판이 될 것이다. 사실 그는 이미 디자이너로 시각예술계에서 활동하고 있었다. 2012년에는 프랑스 파리의 퐁피두(Pompidou) 센터에서 《상상의 존재들: 아직 등장하지 않은 것들의 신화(Imaginary Beings: Mythologies of the Not Yet)》라는 전시를 했었다. 그는 이미 미술계 안에서 활동하고 있었다.
“결국, 미래에는 자연과 인공, 좋은 것과 나쁜 것을 구별하고 나누는 일이 불가능하리라고 생각합니다.” 옥스만의 말이다. 이 말은 그가 추구하는 목표를 알려준다. 그는 과학과 공학, 디자인, 예술이라는 4가지의 창의적 탐구가 통합된 유기적인 프로세스를 꿈꾸고 있다. 그는 통합적인 사유 방식을 가지고 있다. 과학은 기술자가 사용하는 지식을 생성하고, 더불어 예술은 세상에 관한 새로운 인식 체계를 생산하여 새로운 과학적 탐구를 불러일으킨다. 기술자는 디자이너가 사용하는 실용적인 유·무형의 프로그램을 생산하고, 디자이너는 이것을 활용해 예술가에 의해 생성된 새로운 인식을 행동 변화의 구체적 물건으로 생산한다. 이러한 디자이너의 생산은 다시 과학과 예술의 탐구에 영향을 미친다. 옥스만은 이렇게 4가지 창의적 탐구 영역이 무한루프처럼 끝없이 순환하는 상황이 자연생태학과 별반 다를 것이 없다는 생각에서 ‘물질생태학’(Material Ecology)라는 용어를 만들어냈다. -이번 MoMA의 전시에서는 이 용어를 그대로 따왔다.- 그가 말하는 물질생태학이란 과학적으로 개발된 소재와 디지털 제조 방식, 유기적 디자인 양식을 융합하여 자연을 닮은 생성 프로세스와 사물을 만들어내는 연구를 의미한다.
자신의 시간보다 앞서 있는 사람
이번 MoMA 전시를 기획한 큐레이터 파올라 안토넬리(Paola Antonelli)는 네리 옥스만에 대해 다음과 같이 이야기를 했다. “네리는 그녀가 있는 시간보다 앞서 있는 사람입니다.… 과학적인 근거와 신뢰를 지닌 그녀의 작업은 너무나도 아름답습니다. 그녀의 작업은 모든 사람을 향한 보편적인 호소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안토넬리의 이러한 발언은 옥스만의 작업에 대한 과도한 찬사처럼 들린다. 하지만 그가 작업을 통해 성취하고자 하는 것을 알게 되면 생각이 바뀔 것이다. 안토넬리의 말이 그저 찬사로만 들리지 않을 것이다.
옥스만은 우리 주변의 제품과 건물을 디지털 제조과정과 생물학적 생성과정을 결합한 프로세스로 생산하여 마치 생물체처럼 살아 숨 쉬는 창조물을 만들고자 시도한다. 우리는 옥스만이 2015년 TED 강연 「기술과 생물학이 만나는 지점에서의 디자인(Design at the Intersection of Technology and Biology)」에서 사람의 피부를 예로 들어 이야기한 것을 통해 그가 추구하는 작업 방향을 알 수 있다. 그는 한 신체를 구성하는 피부도 얼굴 피부는 얇고 모공이 크지만, 등의 피부는 두껍고 모공이 작다고 말한다. “자연에서는 같은 종류로 조립된 물체를 찾을 수 없다”라고 그는 말한다. 한 생물도 다른 요소들로 구성되었다는 것이다. 옥스만은 이러한 방식을 적용한 예로 파리 패션쇼에 보내기 위해 자신이 3D 프린팅으로 봉제선 없이 제작한 망토와 치마를 보여줬다. 이 옷은 딱딱한 외곽을 지녔지만, 허리 부분은 유연하게 만들어, 봉제선 없는 하나이면서 부분적으로 다른 기능을 수행할 수 있도록 만들어졌다. 생물의 피부 특징을 옷에 구현한 것이다.
옥스만의 가장 유명한 작업은 실제 누에 6,500마리로 자연적인 실크 구조물을 만들어낸 <실크 파빌리온 II(Silk Pavilion II)>이다. 2013년에 시도된 이 작업은 누에가 어둡고 낮은 온도로 이동하는 특성을 이용해 빛과 열을 분배하는 프로그램을 만들어 누에의 움직임을 조정하여, 누에가 마치 하나의 살아있는 프린터처럼 실크 섬유를 뽑아내며 이동하여 구조물의 틈을 메우도록 했던 작업이다. 이런 과정을 통해서 그는 실크 구조물을 만들었다. 3D 프린팅 기술의 전도사라고 불리는 옥스만은, 기술 진보로 등장한 3D 프린팅 기술을 생물학적 구성 요소와 통합함으로써 생물학과 기계공학이 유기적으로 하나 되는 미래의 기술환경을 만들고 있다. 누에를 이용한 이 방식 또한 3D 프린터가 3차원에서 재료를 쌓아서 사물을 만들어내는 방식과 유사하다. 다만 그 역할을 3D 프린터가 아닌, 누에가 하게 한 것이다. 이 작업은 기계공학적 제조방식과 생물학적 생성과정을 결합한 것으로, 그가 말한 “미래에는 자연과 인공의 구분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분명하게 보여준다. 이번 MoMA 전시에서도 <실크 파빌리온> 작품을 새롭게 선보였는데, 이번에는 17,000마리의 누에를 사용했다. 이 전시에는 <실크 파빌리온>을 포함하여 그가 지난 20년간 작업했던 7가지의 주요 프로젝트를 선보이고 있다.
여기서 질문을 던진다. 옥스만이 MoMA에서 전시했다는 이유로 그의 작업을 예술로 봐야할까? 다른 예를 통해 예술을 가늠해보자. 자신이 자고 일어났던 침대는 예술인가? 맞다. 트레이시 에민(Tracey Emin)의 <내 침대(My Bed)>(1988)는 예술로 인정받고 있다. 도시재생은 예술인가? 예술이다. 어셈블(Assemble)의 <그랜비의 네 거리(Granby Four Streets)>(2015)는 터너상을 받았다. 예술가의 침대가, 도시 재생이 예술인데, 옥스만의 실험과 연구 결과를 예술이 아니라고 말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