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스타프 클림트, <키스>, 1907~1908, 캔버스에 유채 및 금박, 180×180cm,
오스트리아 빈 벨베데레 궁전미술관 소장
글. 안진국 미술비평가, 『불타는 유토피아』, 『비평의 조건』 저자 critic.levaan@gmail.com
“생활고에 시달린 모네가 말년에 걸작을 남길 수 있었던 이유는?” 2018년 11월 28일 KBS 2TV ‘옥탑방의 문제아들’이라는 프로그램에서 이런 문제를 냈다. 프로그램에 참여한 연예인 홍진경과 정형돈은 이 문제의 정답을 맞추기 위해 고민하다가 복권 당첨이 아닐까라는 뜬금 없는 말이 나오고, 큰 기대 없이 “복권에 당첨됐다”라는 말을 했다. “정답입니다.” 제작진은 외쳤다. 모네가 복권에 당첨됐다는 것이다. 모네의 복권 당첨 이야기는 조선일보나 한국경제, 이데일리와 같은 종이신문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신문뿐만 아니라, 2019년에 개봉한 다큐멘터리 영화 <몽마르트 파파>에서도 “모네는 복권 당첨으로 평생을 돈 걱정 없이 그림을 그렸다”는 말이 나온다. 공영방송뿐만 아니라, 신문과 영화에서도 모네가 복권에 당첨이 됐다고 말한다. 정말 놀라운 일이다!
모네는 복권 당첨된 부자 예술가?
클로드 모네(Claude Monet, 1840~1926)는 ‘인상주의’라는 명칭을 탄생시킨 19세기 프랑스 화가다. 이 화가가 복권에 당첨되어서 돈 걱정 없이 그림을 그릴 수 있었다는 말이 요 몇 년 사이에 예능 방송과 신문, 영화에서 종종 등장하고 있다. 인터넷에서도 “모네 복권”이라는 키워드로 검색하면 관련된 내용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대부분 ‘1891년에 모네가 10만 프랑의 복권에 당첨됐다’는 내용이 쓰여 있다. 국내뿐만 아니라, 영어 사이트나 온라인 영어 신문에서도 모네의 복권 당첨에 관한 내용을 찾아볼 수 있다. 당첨 연도와 금액까지 모두 일치하고, 국내뿐만 아니라 해외 인터넷에서도 나오는 걸 보면 진짜 모네가 복권에 당첨된 것이 사실인 듯하다. 그 당시 10만 프랑이면 지금 우리 돈으로 약 4억 원으로, 적지 않은 돈이다.
그런데 이상하다. 이렇게 특별한 일을 모네의 생애를 다룬 책이나 미술 전문 서적에서는 찾아볼 수 없다. 모네에 관한 전문 정보가 있는 여러 영어 인터넷 사이트에서도 이런 내용이 없다. 그렇다면 우리는 두 가지 상황을 가정해볼 수 있다. 먼저, 모네의 복권 당첨 사실이 최근에 확인된 것이라 전문 미술 서적이나 온라인 사이트에 아직 반영되지 못했을 가능성이 있다. 그게 아니라면, 모네의 복권 당첨이 잘못 알려진 사실일 가능성이 남아 있다.
모네의 복권 당첨이 널리 알려지게 된 것은 MBC에서 방영하는 ‘신기한 TV서프라이즈’ 때문으로 보인다. 2018년 4월 15일 방영분에서 프랑스의 세계적인 화가들에 관한 이야기를 다뤘는데, 그 중 지독한 가난에 시달렸던 모네가 세계적인 화가가 된 사연이 나온다. 그 내용은 바로 1891년 10만 프랑의 복권에 당첨되어 그 돈으로 넓은 정원을 만들고, 그곳에서 <수련> 연작 등을 그리면서 유명해졌다는 것이었다. 흥미로운 것은 이 방송 이전에는 우리나라에서 모네가 복권에 당첨되었다는 방송이나 기사가 없다는 사실이다. 어쩌면 2018년 즈음에 모네가 복권에 당첨된 것이 처음으로 알려졌고, 그 사실을 ‘신기한 TV 서프라이즈’가 찾아서 방송했을 수도 있다.
그런데 왜 사람들은 모네의 복권 당첨을 의심없이 받아들일까? 그건 아마도 그가 1890년 즈음에 집과 주변의 건물 및 토지를 샀고, 수련 연못이 있는 넓은 정원을 만들었기 때문인 듯하다. 한마디로 그가 넓은 정원을 가진 부자 화가인데, 이게 복권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모네는 여러 유명한 작품을 남겼지만, <인상, 해돋이>와 <수련> 연작이 사람들의 기억에 오래 남아 있다. <인상, 해돋이>는 이름 없는 가난했을 때 그린 작품이고, <수련> 연작은 넓은 정원에 수련 연못을 만들 정도로 삶의 여유가 있을 때의 작품이다. 이 둘만 보면, 가난한 화가가 어떻게 이렇게 부유한 화가가 되었을까에 관해 의문을 품을 수밖에 없다. 복권이라도 당첨돼야 수련 연못이 있는 대정원과 집을 살 수 있는 게 아니겠는가.
진짜 복권에 당첨됐다. 그런데…
1891년 10만 프랑의 복권에 당첨된 화가가 있는 건 사실이다. 그런데 그 화가는 모네가 아니라, 바로 아르망 기요맹(Armand Guillaumin, 1841~1927)이다. 기요맹은 프랑스의 인상주의 화가로, 모네의 <인상, 해돋이>가 전시되었던 첫 번째 인상주의 전시에 해 질 녘 풍경 작품을 전시했던 화가다. 그 후에도 그는 모네와 함께 인상주의 전시에 꾸준히 참여했다. 다시 말해서 기요맹은 모네와 함께 전시하며 인상주의 화풍을 선보인 동료 작가였다. 그는 생계유지를 위해 프랑스 철도 역사에서 낮은 직책의 일을 하면서 여가로 그림을 그렸다. 그런데 1891년 복권에 당첨되면서 직장을 그만두고 여행을 다니며 그림에만 전념했다고 한다. 지금까지 알려진 바로는 기요맹이 거금의 복권에 당첨된 유일한 화가다.
이게 사건의 발단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기요맹과 모네가 그 시대에 함께 활동했고, 두 화가 모두 인상주의 화가로 화풍이 비슷해서 아마도 잘 알려지지 않은 기요맹을 모네로 착각하고 누군가 잘못된 정보를 말했던 것 같다. 모네도 복권에 당첨(?)된 적이 있기 때문에, 그로 인해서 헷갈렸는지도 모른다. 그런데 모네가 당첨된 복권은 바로 군 복권이다. 그 당시 프랑스의 군대 복무 제도는 추첨을 통해서 복무 여부와 기간을 결정했다. 이것을 군 복권이라고 불렀다. 모네는 안타깝게도 7년 동안 군 복무해야 하는 그다지 좋지 못한 복권에 당첨됐다. 그런데 모네는 1년 정도 복무하다 장티푸스에 걸려 7년을 못 채우고 집으로 돌아왔다. 아무튼 모네도 군 복권에 당첨(?)된 적이 있으니, 그것 때문에 기요맹의 복권 당첨과 헷갈렸을 가능성도 있다.
사실 모네가 복권에 당첨되어 부유해졌을 것이라는 우리의 상상과는 달리, 그가 집과 넓은 정원을 사고 그곳에 수련 연못을 꾸밀 수 있었던 것은 그의 작품이 아주 잘 팔렸기 때문이다. 그가 넓은 정원을 꾸몄던 지베르니는 작은 농촌이고, 그곳에서 그가 처음 빌린 농가는 그다지 좋은 집이 아니었다. 모네는 농가에 딸린 땅을 빌려 정원을 꾸미는 그리 부유하지 않은 화가였다. 그런데 화상이었던 폴 뒤랑 뤼엘이 그의 작품을 잘 판매해주면서 경제적 여유가 생겼다. 그래서 집과 넓은 정원도 살 수 있었고, 수련 연못도 만들 수 있게 되었다. 복권 당첨되어 부자가 된 것이 아니라, 작품이 잘 팔려 그리 땅값이 비싸지 않은 작은 농촌에서 넓은 정원을 꾸밀 정도의 경제적 여유를 갖게 됐다는 것이 팩트다.
<인상, 해돋이>를 그리는 가난한 화가와 자신의 연못에서 한가로이 <수련> 연작을 그리는 여유로운 화가의 모습을 떠올려 보면, 그 차이가 너무 커서 복권 당첨이라는 말에 설득당하기 쉽다. 하지만 가난한 화가가 갑자기 여유로운 화가가 된 것은 아니다. 긴 시간 동안 노력했던 모네의 작품 활동이 결실을 본 것일 뿐이다. 어떤 사람의 한순간만 보면 잘못된 추측이나 판단을 하기 쉽다. 전체 인생을 살펴봐야 한다. 잊지 마시길, 모네는 거금의 복권에 당첨된 적이 없다는 사실을….

구스타프 클림트와 에밀리 플뢰게가 함께 나룻배를 타고 있는 장면

구스타프 클림트, <에밀리 플뢰게의 초상>,
1902, 캔버스에 유채, 181×84cm,
빈 시립 박물관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