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무제>, acrylic on canvas, 162x112cm, 2018

<피투>, Oil on canvas, 72.7x60.6cm, 2016
글. 김찬용 전시해설가 art_inside@naver.com
“표현하지 않은 감정은 절대 죽지 않는다. 산 채로 생매장 해봐야 나중에 추한 모습으로 등장하게 될 것이다.” 정신분석학의 창시자로 유명한 지그문트 프로이트가 남긴 말이다. 우리는 어른이 되어가고 사회에 섞여감에 따라 다양한 자아를 갖게 되고, 위치와 상황에 따라 감정을 숨기거나 망각하며 살아가는 것에 익숙해지곤 한다. 때론 예술이 그렇게 무의식의 영역에 쌓여버린 감정을 끌어내 우리를 각성하게 이끈다. 자신의 경험을 날 것 그대로 뿜어내 감상자의 무의식을 자극하는 작가, 김승윤을 만나보자.
"<피투>라는 작업을 좋아하는데, 그 당시 제 감정이 잘 드러난 작업이란 생각이 들어요. 그림을 자세히 보시면 뒤에 사람들이 지나가는데 ’나’는 묶인 채 어디론가 끌려가고 있는 형상으로 그려져 있거든요. 작업도, 삶도 주체성을 갖지 못하고 어딘가로 끌려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을 때 그렸던 작업이었는데, 저도 볼 때마다 저의 상황과 심리에 따라서 그림 속 이입하는 대상이 달라지는 것 같아서 좋아하는 작품이에요."
Q. 독자분들께 자신의 작품 세계를 소개한다면?
드로잉과 회화작업을 중심으로 작업합니다. 주제는 개인적인 경험들이 많이 담겨 있어요. 제가 희귀병을 앓고 있어서 합병증으로 어릴 때부터 백내장이 있어서 한 쪽 눈의 시력을 많이 잃게 되었거든요. 그림을 그리는 사람으로서 볼 수 없다는 것에 대한 공포, 상처, 고통을 표출하는 창구로 그림을 사용했던 것 같아요. 사춘기부터 건강 악화를 통해 제가 겪어와야 했던 절망과 우울감을 해소하기 위해 감정을 뱉어냄으로써 나의 감정을 객관화시키면 나만의 언어가 생길 수 있다는 생각을 해보게 됐거든요. 특히 그 순간의 감정을 직관적으로 표출할 수 있는 가장 효율적인 매체가 드로잉이나 회화적 방식이라고 생각해서 많이 활용해 왔어요. 결국 이 과정 속에서 저만의 예술언어를 만드는 다양한 작업을 하고 있다고 생각해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
Q. 작업이 텍스트적으로 정리되는 형태를 경계하는 이유가 있는지?
작업이 완성되면 제 손에서 떠난 것이라고 생각해요. 작업이 완성되었다는 건, 마치 자식이 성인이 되는 것처럼 알아서 자생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거든요. 부모님이 자식을 정의하거나 틀에 가두면 안되듯이, 제 작품도 스스로 시대나 감상자의 경험에 따라서 자연스럽게 느껴지고 해석되는 작품이 되어야지 언어적으로 감상의 형태가 정해져 있는 작품이 되길 원하진 않아요. 그래서 제 감정이 작업에 담겨있다고 해서 감상자도 꼭 동일한 감정을 느껴야만 하는 것이 아닌 더 확장성과 공감력이 있는 시각 언어를 만들기 위해 관념적이거나 텍스트적인 작업을 경계하고 있는 것 같아요.
Q. 개인적으로 무의식의 표현이라는 점에서는 초현실주의가, 즉흥성에서는 해프닝이 떠올랐는데 영감을 주는 작가나 작품이 있는지?
직접적인 영향을 떠나서 영국의 토니 베반이라는 작가를 좋아해요. 베반의 작품을 보면서 “이것이 날것이구나!”라는 느낌을 받았었어요. 제 작품도 이런 식으로 표현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들었고요. 짧은 붓으로 강하고 거칠게 표현하는 그 자유로운 표현들이 저에게 영감을 준 부분이 있었던 것 같아요. 그리고 제가 표현하는 작업이 꼭 고통이나 우울만 표현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제가 꿈꾸는 동화적 유토피아를 표현하는 작품들을 선보이는 경우도 있는데, 그런 측면에서는 피터 도이그의 작품도 굉장히 좋아하는 편이에요.
Q. 날 것 그대로의 표현이라고 하지만 다양한 구상적인 형상들이 등장하는데, 대상이 선택되는 기준은 무엇인가?
대상 선택에 기준은 없어요. 그 순간 떠오르고 느끼는 경험에 따라 눈앞의 대상을 표현하고 있어요. 그리고 현재로선 너무 극한의 추상표현으로 가면 제가 도달하고자 하는 저의 시각언어를 효과적으로 선보이기 어려운 지점도 있을 것 같았고요. 그림 속의 대상은 특정 인물이나 무엇을 묘사하는 것이 아닌 제 머릿속에 떠오른 관념을 그린다고 생각해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
Q. 본인의 작품 세계가 가장 잘 드러난 작품을 소개해 준다면?.
우선, <피투>라는 작업을 좋아하는데, 그 당시 제 감정이 잘 드러난 작업이란 생각이 들어요. 그림을 자세히 보시면 뒤에 사람들이 지나가는데 ’나’는 묶인 채 어디론가 끌려가고 있는 형상으로 그려져 있거든요. 작업도, 삶도 주체성을 갖지 못하고 어딘가로 끌려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을 때 그렸던 작업이었는데, 저도 볼 때마다 저의 상황과 심리에 따라서 그림 속 이입하는 대상이 달라지는 것 같아서 좋아하는 작품이에요. 그리고 <무제>가 지금의 저를 잘 표현한 작품이라고 생각해요. 이 작품은 제 표현방식이 정제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던 작품이거든요. 지금의 저의 작업 방식에 있어 저의 예술 체계가 정리된 작품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현재로서 대표작이라고 말할 수 있는 작품이 될 것 같아서 두 작품을 같이 봐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
Q. 근작의 제목은 무제가 많은데 이유가 있는가?
처음에는 제목을 붙이려 노력했는데, 시간이 지난 이후 그 제목이 적절하지 못한 경우도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 뚜렷한 주제가 설정되지 않은 경우에는 날 것 그대로의 표현을 담아놓으려고 제목을 정하지 않고 있어요. 앞서 말씀드린 독자적으로 자생하는 작업이 되길 원하는데, 제목이 이를 제한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웬만하면 무제로 많이 소개하고 있어요.
Q. 작가로서 현재 가장 힘든 점은?
현실적인 부분의 고민은 어쩔 수 없이 존재하지만 의지만 있다면 문제되지 않을 수 있다고 생각해요. 진짜 고민은 제가 오래도록 작업을 하며 연구해도 예술적 성취를 얻지 못하는 건 아닐까에 대한 걱정이 있는 것 같아요. 예술을 대하는 자세에 있어 근본적인 두려움이 있는 것이라고 할 수 있겠죠. 그 외에 현실적인 것들은 다 제 의지에 있다고 생각해서 크게 두렵게 느끼진 않아요.
Q. 앞으로 작가로서의 꿈이 있다면?
제 스스로의 시각 언어를 구체화하는 것, 그리고 그 다음의 작업으로 나아가는 것이 꿈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날 것이 숙성돼서 매끄럽게 다음을 향하고, 그 시간이 10년 20년 지났을 때 멋진 것이 되어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하며 우직하게 작업을 해나가려 해요. 앞으로도 저 자신에게 솔직하게 작업해 나갈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구체적 목표점을 정해놓고 나가는 것이 아닌 예술이라는 정글 안에서 끝없이 고민하고 도전하는 예술가가 되어 스스로 익어가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