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퓨처로봇의 송세경 대표<사진:중기이코노미>
글. 중기이코노미 채민선 기자 iscra79@junggi.co.kr
명령이 아닌 대화였다. 로봇은 사용자의 얘기를 주의깊게 듣고 해결책을 찾아줬으며, 당황하는 표정까지 읽고 반응했다. 서비스로봇 전문기업 ㈜퓨처로봇이 개발한 표정을 가진 로봇, 그 이름이 퓨로다.
‘감성로봇’ 퓨로는 전 세계적으로 가장 유명한 휴머로이드 로봇인 소프트뱅크의 ‘페퍼’보다 4년이나 앞선 2010년에 태어났다. 퓨로는 이미 란조우 은행을 비롯한 중국의 ‘8대 은행’, 미국 캘리포니아주 산호세공항 등에서 안내서비스를 맡고 있다. ㈜퓨처로봇은 2015년 미국 로봇 전문지 ‘로보틱스 비지니스 리뷰’가 선정한 세계 로봇산업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50대 로봇기업(RBR50)에 이름을 올렸다. 2018년 평창올림픽에서는 평창을 찾은 해외 선수, 기자, VIP 등에게 한국인의 표정으로 통역과 안내를 맡을 예정이다.
“퓨처로봇의 로봇들은 사람중심의 융합입니다. 세상에는 이미 너무 많은 기술이 있고, 이러한 기술을 모으면 새로운 팀이 되는 것이죠. 로봇에 감성과 배려를 융합해 인간에게 행복과 위로를 주는 것이 퓨처로봇이 지향하는 콘셉트입니다.”
KAIST에서 로봇공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은 ㈜퓨처로봇 송세경 대표는 삼성전자에서 LCD 생산용로봇 개발을 담당했고, 2006년에는 전략기획실에서 미래사업 로봇분야에 대한 기획도 했다. 송 대표는 ‘기회는 늘 새롭게 오는 것이며, 미리 준비한 자가 미래를 갖는 것’이라고 생각했고, 삼성을 퇴사해 2009년 로봇사업에 뛰어들었다. 운동선수가 국가대표가 되려면 강도높은 트레이닝을 받듯, 송 대표는 사업가로서 실전 트레이닝을 받을 각오로 창업을 준비했다.

송세경 대표는 “아날로그와 디지털이 결합된 디지로그 로봇이 미래의 로봇 모습”이라고 말한다.
<사진:㈜퓨처로봇>

미국 캘리포니아주 산호세 공항에서 안내서비스를 하고 있는 퓨로
<사진:㈜퓨처로봇>

퓨로는 사람의 말 뿐만 아니라 표정도 읽어 반응한다.
<사진:중기이코노미>
“준비한 자가 미래를 갖는 것”… 2009년 로봇사업에 뛰어들다
“새로운 개념의 로봇이 필요한 시대가 옵니다. 아날로그와 디지털이 결합된 디지로그 로봇이 미래의 로봇 모습이죠.”
송 대표는 한국적인 ‘동양의 지혜’를 결합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으로 제품개발을 시작했다. 더 뛰어난 기술이 변화를 이끄는 것이 아니라 사람과 공존하는 기술이 변화를 주도할 것이며, 이를 위한 대표적인 도구가 서비스로봇(Social Robot)이라고 말한다. 서비스로봇의 핵심은 Interaction(상호작용)과 Infotainment(정보오락, information+entertainment) 기능을 기반으로 인간과 커뮤니케이션하면서 기술의 편리를 제공하는 것이다. 사람을 대체하는 것이 아닌 보조하고 공존하는 기술이 돼야한다는 얘기다.
“AI·IoT·로봇·빅데이터에 대한 관심이 그 어느 때보다 뜨겁습니다. 이러한 4차 산업혁명 중심에 로봇이 있죠. 로봇은 단순한 기술과 제품이 아니라, 삶의 방식을 재편하는 매개체가 될 것입니다. 지금까지의 산업용로봇이 기술의 편리와 산업 융성의 도구로 활용됐다면, 서비스로봇은 기술과 사람을 연결하는 도구로 활용될 것입니다.”
그러나 송 대표에 따르면, 지난해 대한민국의 로봇 수출실적은 7500억원에 불과하다. 일본이 5조원, 중국이 2조원인 것에 비해 턱없이 적다. 국내 많은 로봇기업이 폐업하고, 생존한 로봇기업은 대부분 영세성을 면치 못하고 있다. 해외에서는 유비텍 같은 로봇기업이 수백억원에서 수천억원의 투자를 받고 구글, 소프트뱅크, 아마존 같은 글로벌 기업은 혁신 로봇기업을 인수합병하면서 차세대 로봇산업 시장을 빠르게 장악하고 있다.
특히 송 대표는 일본이 로봇 신전략을 4차 산업혁명의 선도전략으로 내세우고, 전 산업과 사회분야에 로봇도입을 추진해 거대 사물인터넷(IoT) 초연결 세상을 만들겠다는 전략을 주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반면 우리나라는 국가차원의 중장기 로드맵과 이를 지원할 컨트롤 타워가 없고, 정권이 바뀔 때마다 정치적 선호에 따라 단기적인 육성대책만이 나왔다. 또 산학연 사이에 불신이 만연해 협력이 불가능한 상태에서 10년 동안 갈피를 못잡고 있다는 것이 송 대표의 진단이다. 따라서 미국, 중국, 일본, 독일이 로봇산업 혁신을 어떻게 주도했는지에 대한 분석과 함께 냉정한 반성이 필요하다고 했다.
“산업은 흐르는 물… “공공서비스 로봇이 맡으면 사회문제도 해결”
지난 2010년 정부는 4대강 수질점검을 위해 물고기로 봇을 개발했다. 지난 국감에서 더불어민주당 박정 의원에 따르면, 한국생산성기술연구원이 주축이 돼 57억원을 지원받은 사업이다. 그러나 실험결과 조작, 특허·논문 중복, 연구개발비 부당 집행 등 총체적 부실사업인 것으로 드러났다. 그 과정에서 허위 검수서류를 작성해 업체에 납품대금을 지급하고, 대가로 금품을 수수한 한 연구책임자는 지난 8월 대법원에서 사기죄를 확정받았다. 물고기로봇 개발사업은 우리나라의 로봇산업과 로봇정책을 보여주는 단면이란 것이 송 대표의 설명이다.
“산업은 흐르는 물과 같이 다른 물과 합쳐지고 계속 흘러 바다로 나아가야 하는데, 우리나라 로봇산업은 그 물줄기가 다 끊겨 있죠. 특히 로봇산업은 수족관처럼 정부 홍보용으로 필요할 때만 관심을 갖는 정도입니다. 대기업에서도 제대로 로봇산업을 하기 보다는 마케팅 툴의 하나로 이용할 뿐이죠.”
그래서 국가가 적극적으로 정책을 세우고 대기업이 인프라를 구축하고 스타트업이 들어와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만드는, 정부와 대기업이 투자를 하거나 M&A를 통해 키워나가는 모델이 가장 이상적이라고 송 대표는 바라본다. 특히 공정경쟁 환경을 만들어 그 안에서 자연스러운 생태계의 흐름이 조성되면, 시간이 지나면서 생명체처럼 살아 움직이는 산업이 될 것이라고 했다.
“4차 산업혁명 관련사업자들이 마음껏 필드에서 연습하고, 기술과 결합해 새로운 시도를 하고 자극을 줄 수 있도록 공공시장이 테스트베드가 되는 것이 중요합니다. 한국의 통신산업이 공공시장을 테스트베드로 빠르게 성장했듯이, 흐름이 빠르고 대규모로 사용하는 공공시장이 테스트베드가 돼야 합니다.”
송 대표는 정부의 소득주도 성장, 혁신주도 성장은 신산업의 테스트베드로 적합한 모습이라고 평가했다. 예를 들어 행정안전부의 민원처리나 보건복지부의 치매케어 등 공공의 서비스를 인공지능 로봇이 담당하도록 하면 혁신과 사회문제를 동시에 풀어갈 수 있다는 것이다.
“산업의 물길을 만들어 가는 과정에서 고통의 시간은 감내해야 하지만,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을 국가가 제시해주고 공정경쟁을 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는 역할을 해야 합니다.”